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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패션 디자이너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Cristobal Balenciaga) - 재단의 마법사

by 에블린킴 2022.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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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stobal Balenciaga

파리 꾸뛰리에의 자존심,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대중적인 명성보다는 쿠튀리에로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 소신 있는 디자이너이다. 1895년 스페인 어촌마을에서 어부의 아들로 출생한 그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바느질을 하던 어머니를 따라 옷을 만들기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패션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바느질에 있어 타고난 솜씨가 있었던 발렌시아가는 어려서부터 그 두각을 드러냈다. 카사 토레스 후작 부인이 입은 드레스를 며칠 만에 똑같이 만들어 내는 것을 확인하고, 후작부인은 발렌시아가의 옷 만드는 솜씨에 감탄한다. 프랑스 장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 후작부인은 발렌시아가를 산 세바스찬에 있는 부티크에 추천하였다. 카사 토레스 후작 부인의 후원으로 발렌시아가는 부티크에서 경력을 쌓으며 스페인에서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나, 스페인 내전으로 인하여 스페인에서의 디자이너 활동은 중단하고 1937년에 프랑스 파리로 활동무대를 옮겨 자신의 이름을 딴 "발렌시아가"부티크를 오픈한다. 파리에서 그는 스페인의 화가였던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에게 영감을 받은 첫번째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그 당시 그가 사용했던 고급 원단과 소재 그리고 완벽한 재단과 봉제 퀄리티는 파리 패션계의 이목을 끌게 되고 파리에서 첫 패션쇼를 선보이자마자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크리스티앙 디올과 함께 파리 오뜨 꾸튀르의 황금시대를 열어 나간다. 그 후 발렌시아가는 꾸뛰리에로서의 명성을 지키는데 전념하였고 1968년에 패션계에서 은퇴 선언을 하였다.

천재적인 재단 기술과 디자인의 혁신성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디자인 스케치부터 재단, 봉제에 이르기까지 옷을 제작하는 데 있어 모든 과정을 소화낼 수 있는 독보적인 디자이너였다. 당시에는 디자인만 하고 옷을 직접 재단하고 봉제를 하지 않는 디자이너들이 많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이러한 디자이너들은 직접 재단과 봉제를 하지 않으니 디자인을 하는 데 있어 한계점이 존재하였다. 하지만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재단에 대한 지식이 월등히 뛰어난 사람으로서 남들이 구현하지 못한 혁신적인 디자인과 획기적인 실루엣을 창조해낼 수 있었다. 발렌시아가의 뛰어난 재단 지식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발휘되었는데, 적은 양의 원단으로 풍성한 실루엣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였고 마침내 그 방법을 터득하여 부티크를 꾸준히 운영하는 기지를 발휘하였다.

동시대의 디자이너 였던 크리스티앙 디올이 허리를 잘록하게 강조한 뉴룩을 시그니처로 내세워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에서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허리선이 불룩한 '코쿤 실루엣'을 선보이며 독자적인 패션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애초에 크리스티앙 디올이 시도했던 뉴룩의 실루엣은 이미 10년 전에 발렌시아가가 시도했던 스타일이었으며 이처럼 발렌시아가는 현재의 패션 흐름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만의 디자인 철학을 확고하게 지키면서 미래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디자이너였다. 그래서 발렌시아가의 디자인은 항상 시대를 앞서 나가는 획기적인 디자인이 많이 존재하였으며 구조적이면서 건축적인 절제미와 동시에 우아함을 지향하는 스타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이처럼 발렌시아가가 보여준 혁신적인 디자인과 오뜨 쿠튀르정신은 수많은 디자이너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현대 패션브랜드 발렌시아가의 행보

1968년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은퇴한 후 30여 년간 브랜드 <발렌시아가>는 침체기였다. 점점 대중들에게 잊혀 가던 <발렌시아가>는 1996년, 26살의 프랑스 디자이너 니콜라스 제스키에르를 만나면서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미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성향의 니콜라스는 다양한 실루엣과 패턴을 컬렉션에 선보이며 오랫동안 잠들어있었던 발렌시아가를 화려하게 부활시킨다. 그중에서 가장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던 것은 바로 일명 '모터백'으로 불리는 가방으로 현재까지도 발렌시아가의 스테디셀러 아이템이자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등극되어있다. 이후 니콜라스 제스키에르의 후임으로 알렉산더 왕이 <발렌시아가>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로 영입된다. 하지만 디자인에 있어 상업성을 강조했던 알렉산더 왕과 전통적인 오트 쿠튀르 하우스로부터 출발하였던 <발렌시아가>와는 추구하는 디자인 방향이 달랐고 2016 s/s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알렉산더 왕은 해고된다. 알렉산더 왕의 뒤를 이은 후임은 <베트멍>을 이끄는 뎀나 바잘리아로 선정되는데, 그의 벨기에식 해체주의와 스포티한 이미지를 결합하여 패션계에서 <발렌시아가>의 이미지를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한다. 특히 2017 s/s에 출시한 양말 형태의 운동화인 "스피드 트레이너"와 2017 f/w에 출시한 청키한 굽의 두껍고 투박한 운동화인 " 트리플 s"는 <발렌시아가>의 독보적인 디자인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현재까지도(2022년) 뎀나 바잘리아가 <발렌시아가>를 이끌고 있으며 브랜드 창시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계보를 이어 오뜨쿠튀르 정신이 계승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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