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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패션 디자이너

폴 푸아레 (Paul Poiret) - 패션의 제왕

by 에블린킴 2022.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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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푸아레와 모델들

독자적인 패션 세계를 지닌 폴 푸아레 일대기

예술적이고 독특한 개성을 지닌 패션 디자이너인 폴 푸아레는 1879년에 출생하였다. 옷가게를 운영하시던 부모님을 둔 덕분에 자연스럽게 패션을 접하게 되었고 그 후 디자이너로서 경력을 쌓게 된다. 푸아레는 그 당시 유명한 패션 하우스를 운영했던 자크 두세(Jacques Doucet)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패션 디자이너였으며 1903년에는 자신의 첫 패션 하우스를 설립하게 된다. 푸아레의 아내 드니스(Denise)는 그에게 있어 최고의 뮤즈였으며 푸아레가 전개했던 패션 스타일에 엄청난 영향을 주게 된다. 푸아레는 현대적인 실루엣을 보여주는 튜불러 드레스를 처음으로 제시함으로써  직선적인 실루엣을 선보이면서 허리를 졸라매던 코르셋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켰다는데 큰 의의를 지닌다. 또한 발목 부분으로 갈수록 점차 좁아지는 호블 스커트를 대중화시켰으며 오리엔탈적 요소에 큰 관심을 보이며 기모노, 페르시아풍의 하렘팬츠, 미나렛 스커트 등이 그의 대표 아이템으로 손꼽을 수 있다. 이러한 폴 푸아레의 스타일은 1920년대 플래퍼(flapper look) 스타일의 전신이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폴 푸아레 패션 하우스는 1차 세계대전 전까지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그의 전쟁 참여로 인해 4년 동안 패션 하우스 운영을 멈추게 되면서 그의 명성은 점차 사그라들었고 1929년에는 파산 선언을 하게 된다. 점차 가세가 기울고 가난에 허덕이다 그는 1944년에 불운하게 생을 마감한다.

패션 모더니즘의 선구자

폴 푸아레는 18세기 말 신고전주의 스타일 부활시키는데 일조한 디자이너로 그의 초기 디자인들은 하이 웨이스트와 엠파이어 드레스 형태가 많이 보였으며 이는 디렉투아르(directoire) 양식으로 불려진다. 컬렉션을 구상할 때 그의 아내 드니스(Denise)는 그의 영원한 뮤즈였으며 그가 선보였던 스타일은 드니스의 체형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었다. 푸아레가 디자인한 대부분의 옷은 소녀 같은 호리호리한 체형의 드니스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폴 푸아레는 직물의 재단과 솔기를 최소화시키고 입체재단 즉 드레이핑 테크닉을 옷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디자이너였다. 한 예로 호블 스커트는 허리에서부터 골반으로 떨어지는 부분에서 드레이핑 기법으로 주름을 잡아 발목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실루엣으로 구현한 스커트이다. 또한 옷의 앞판과 뒤판의 형태가 같은 형태로 제작하기도 하며 이러한 드레스 위에 착장자가 허리끈을 묶어서 스타일링하도록 하였다. 허리끈을 묶는 위치에 따라 하이웨이스트와 로우 웨이스트로 스타일이 분류되면서 착장자에 의한 스타일 변화로 현대적인 개념을 도입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복식에 있어 구조적인 단순성을 강조한 폴 푸아레의 디자인은 코르셋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켰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패션과 예술의 접목

폴 푸아레는 회화작품을 옷에 접목시키려 시도한 최초의 디자이너로 당시 여성복에서 잘 쓰지 않았던 비비드 한 색감의 강렬한 야수파의 색채를 의상디자인에 접목하였다.
그는 러시아 발레단의 발레복에 오리엔탈리즘을 반영하여 기모노풍의 드레스, 터키풍의 판탈롱, 터번 등을 선보이는 등 이국적인 컬렉션을 추구하기도 한다. 폴 푸아레의 이국풍 작품 중 큰 성공을 거둔 것은 바로 '공자(confucious)'로 불려지는 기모노풍의 짧은 코트이다. 폴 푸아레는 "나는 내 옷에 서명을 할 때마다 나를 이 명작의 창조자로 여긴다"라고 말할 정도로 본인이 디자인한 옷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여겼다.  또한 만 레인, 장 콕토와 같은 사진작가들과 교류도 활발히 하면서 다양한 예술문화활동에도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는 사진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들과 교류를 하며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알렸는데 특히 이리브나 르 파프(lepape)와 같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폴 푸아레의 작품을 일러스트로 그리면서 푸아레의 작품세계를 널리 알리는데 일조하였다.

Les Robes de Paul Poiret / Racontes par Paul Iribe (1908)


돋보이는 브랜딩 기획력과 사업 확장

폴 푸아레는 1911~1913년에는 모델들과 함께 국제 패션쇼를 순회한 최초의 디자이너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그 당시만 해도 소규모 형태의 프라이빗한 패션 품평회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는 패션쇼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국적인 파티를 열어서 자신의 신제품들을 선보이기도 하였던 그는 패션쇼를 하는 장소를 이국적으로 꾸민 뒤, 자신은 술탄으로 차려입고 초대한 손님들 역시 오리엔탈 느낌의 의상을 입혀 이색적인 패션쇼 경험을 선사하는 등 패션 하우스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형성에 모든 것을 총괄한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이자 브랜드 매니저였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향기를 조합하는데 큰 관심을 가졌던 그는 다양한 향들을 조합하여 향기를 디자인한 후, 최초의 패션 향수를 론칭하기도 한다. 이는 그가 사업을 범위를 패션에 국한시키지 않고 더 넓게 사업을 확장해나가는 포부를 보여주는 한 사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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