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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패션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 (Pierre Cardin) - 전위적인 프랑스 패션 사업가

by 에블린킴 2022.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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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가르뎅 (Pierre Cardin)

타고난 조형감각의 대중적인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 (Pierre Cardin)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프랑스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이탈리아 출생의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이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2살 때 파시즘을 피해 프랑스로 넘어왔는데, 와인 상인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인 피에르 가르뎅이 건축가가 되길 원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건축과 패션에 관심을 보였던 피에르 가르뎅은 14세에 패션계에 입문하게 된다. 피에르 가르뎅은 잔느 파퀸(Jeanne Paquin), 엘사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 밑에서 일을 배우고 영화 의상 제작에도 참여하는 등 패션에 대해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또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패션 하우스에서 '재단사'로서 일을 하다가 1950년 자신을 이름을 본떠 패션 하우스 설립하였다. 이 시기에 피에르 가르뎅은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무대의상과 슈트 디자이너로서 명성을 쌓아나간다. 무대의상의 경우 수요가 비정기적이었으므로 그는 꾸준한 고정 수입을 위해 슈트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사업을 이끌어나갔다. 1954년 허리에서부터 엉덩이까지 둥글게 부풀린 형태의 '버블 드레스'를 디자인하였고 패션계의 주목을 받았다. 1957년에 성공적인 첫 꾸뛰르 컬렉션을 선보이고 1959년에는 쁘렝땅 백화점에 오뜨 꾸뛰르 패션 디자이너 최초로 기성복 라인을 판매하게 된다. 그 당시 오뜨 꾸뛰르는 만인을 위한 옷이라기보다는 소수의 특권계층을 위한 옷이었다. 그러한 꾸뛰르 의상을 기성복 컬렉션으로 디자인하여 좀 더 대중에게 다가가기 쉽게 접근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 바로 피에르 가르뎅이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누구나 하이패션을 입을 수 있다는 평등주의적 메시지로 해석되기도 한다. 피에르 가르뎅은 여성복으로 시작하여 남성복, 아동복으로 패션사업분야를 확장해나갔으며, 추후에는 라이선스 사업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디자이너로 각인되었다. 초기에는 럭셔리 하이엔드 브랜드로 각광을 받았던 '피에르 가르뎅'이었지만 라이선스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너무 많은 곳에 이름이 사용되어 가치가 하락되는 부작용을 겪기도 하였다.

피에르 가르뎅 (Pierre Cardin)

조형성에 대한 실험정신과 미래지향주의자

1960년대부터 사회 전반적으로 우주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아폴로 11호를 탄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이 달에 착륙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우주와 연관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고 패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피에르 가르뎅은 자연스레 미니멀하고 우주시대적인 요소를 디자인에 응용하였다. 기하학적인 도형과 패턴을 선호하였던 피에르 가르뎅은 원과 직선의 대조를 디자인으로 풀어내면서 '우주시대 룩(space age look)'처럼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지향하였다.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디자인을 즐겨 선보였던 피에르 가르뎅의 대표 아이템으로 비닐 레인코트, 박쥐 점프슈트, 캣 슈트 등을 들 수 있다.
1960년대에 피에르 가르뎅이 우주적인 요소와 콘셉트에 매료되어 그것을 중심으로 컬렉션을 전개하였다면 1970년대에 들어서는 천을 잘라내어 모양을 만드는 컷아웃 기법을 활용하여 조형성을 살린 디자인을 많이 선보이는 게 특징이다. 당시 피에르 가르뎅은 컷아웃 형태를 잘 살리기 위한 두꺼운 모직물 및 저지를 사용한 디자인을 자주 하였다. 또한 입체적인 표면이 특징인 테크노 직물 '가르딘 느(Cardine)'를 개발하여 다양한 컬러로 생산하여 컬렉션에 응용하였다. 조형적인 디자인 실험을 즐겨하였던 피에르 가르뎅은 민소매 형태의 미니멀한 드레스 밑단에 철사 후프를 끼워 원단을 늘리는 방법을 활용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피에르 가르뎅은 몸에 꼭 맞게 의복 형태를 구현하기보다는 인체를 구속하지 않고 그 주변과의 공간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정의하였다.

피에르 가르뎅 (Pierre Cardin) 디자인

브랜드 라이선스 사업의 개척자

피에르 가르뎅은 국제적으로 브랜드 사업 진출을 활발하게 하려고 시도한 열정적인 디자이너였다. 이러한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건 라이선스 사업의 영향이 컸다. 라이선스 사업은 유명한 디자이너가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방식으로  피에르 가르뎅은 국제적으로 대량생산제품에 자신의 이름을 넣은 상표를 부착하는 '라이선스 브랜드' 사업을 승인하였다. 이로 인해 선글라스, 구두, 가방 등 각양각색의 아이템들에 '피에르 가르뎅'마크가 찍힌 채로 전 세계에 판매된다. 다양한 국가에서 피에르 가르뎅의 이름을 라이선스 비용을 주고 구매하여 제품의 상표로 넣음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피에르 가르뎅'은 익숙하고 친숙한 브랜드로 이미 각인되어 버렸다. 이처럼 라이선스 사용이 남발되고 해당 상표를 사용한 상품의 품질관리가 제대로 되지 못하자 '피에르 가르뎅'의 브랜드의 가치가 하락하게 되어 위기를 겪기도 하였지만 일부 라이선스 매각과 브랜드 리뉴얼로 위기 극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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